[한겨레 신문] 성형중독증 (2001. 2. 22)

중독 당신은 지금? [성형중독증]

기분전환하러 또 성형수술

한 성형외과 진료실에 30대 후반의 여성이 얼굴주름 제거용 보톡스 주사를 맞으러 왔다. 그는 눈, 코, 볼, 턱, 얼굴주름, 허벅지, 유방확대 등 성형수술의 모든 과정을 거쳐본 이른바 성형 중독증 환자였다.

그는 20대 초반에 쌍꺼풀 수술을 받고, 몇달 뒤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콧등을 조금 높이고 콧망울을 줄이는 수술을 받았다. 두 해 뒤에는 인기 탤런트 ㄱ씨처럼 볼을 도톰하게 하기 위해 무자격 의료인에게 사용금지된 액체 실리콘 주사를 맞았다. 또 결혼을 앞두고는 비전문의에게 유방확대술과 얼굴주름 제거수술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액체 실리콘이 흘러내리면서 부작용이 생겨 전문의에게 제거술을 받았으나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 오랫동안 휴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최근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해지자 “자신의 유방이 처지고 몸매가 볼품이 없어져서 남편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여겨 남편의 해외출장 기간에 몰래 저축해둔 적금을 찾아 유방수술과 허벅지 지방흡입술을 받았다.



그 뒤 그는 친구들이 주름수술을 받고 더 젊어보이자 왠지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고 뒤쳐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최근에 몇개월 간격으로 맞는 얼굴주름 제거용 보톡스 주사약 값을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과 보톡스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갈수록 외모를 우선시하는 사회풍조가 만연하면서 성형외과에는 이같은 성형 중독증 환자들이 적잖게 늘고 있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2~3개월에 한번씩 수술을 받으러 오는 환자가 더러 있다”면서 “이들은 수술이 필요없거나 더 이상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수술을 해달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털어놓았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성형수술이 외모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을 찾아주는 유용한 의술이지만, 병적으로 집착할 경우 신체 및 정신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많은 성형 중독자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흔히 여성들은 자신의 심경이 변화할 때 그것을 외면적으로 표출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이 때 머리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반복적인 성형수술로 외모를 바꾸는 것이다. 이같은 원인은 성형수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일부 사회풍조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있다.



또 자신의 심리적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성형수술은 일시적인 충족감과 행복감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이런 환자들은 성형수술을 한 뒤에도 처음과 같은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느껴 계속해서 성형수술을 할 가능성이 높다.



24살의 박아무개양은 2년에 걸쳐 모은 돈으로 최근 눈과 코, 턱의 성형수술을 받았다. 전문의가 볼 때는 수술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막무가내였다. 면담결과 그는 자신보다 예쁘고 학교공부를 잘 하는 언니와 그를 편애하는 편모 슬하에서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면서 성장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심각한 성형 중독증으로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잘못된 강박관념을 갖는 신체이형성장애 때문에 병적으로 성형수술에 매달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마른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뚱뚱하다고 느끼거나, 갸름한 얼굴형임에도 광대뼈가 나왔다고 우기며 거듭해서 성형수술을 받곤 한다.



수술전 충분한 상담받아야



성형 중독증상이 심하면 정신분열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병적으로 성형수술에 집착하는 조짐이 보이면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장기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심리·정신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열등감, 갈등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형수술을 선택하거나, 여러번 수술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수술에 집착하고 있다면 성형 중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성형수술이 결코 모든 심리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단순히 환자의 요구에만 응하지 말고, 환자가 심리·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지 여부를 판단한 뒤 수술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성형외과 전문의는 충분한 상담과 진찰을 통해서 환자의 성격, 심리상태, 생활환경, 사회적 배경, 수술 동기 등을 잘 파악해야 하며, 수술 후의 결과에 대한 정확하게 설명해 환자가 갖고 있는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형 중독증 환자들이 모두 자신의 문제를 외면적인 것에서 찾거나 외모로 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결코 받지 않는다는 데 어려움이 많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우처럼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을 받아도 좋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성형 중독증을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한겨레신문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도움말: 서만군 정원 성형외과 원장